아내가 나를 지하방으로 데리고 가면서 비로 새 둥지를 부쉈다고 한다. 방문을 열고 나가 보니 뒤뜰 시멘트 바닥에 마른풀 뭉치가 떨어져 있다. 새가 덱 밑에 지은 둥지를 쓰레기인 줄 알았단다.
  

새들은 아침에 잘 운다. 담장 너머 숲에서는 휘파람 같은 소리가 들려 왔는데, 그 소리의 주인공이 둥지의 소유자 같다. 우리는 새 둥지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지하방에 가기를 삼갔다.
  

날씨가 따듯한 어느 날, 아내가 나를 뒤뜰로 데리고 가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데를 쳐다보니 덱 받침대 위에 둥지가 보였다. 서둘러 다시 지은 것 같다. 주변 빈터에 널려 있는 마른풀을 물어다 둥그렇게 쌓아 올렸는데 솜씨가 좋다.
  

나는 일층 거실에서 서쪽 창밖을 내려다볼 때면, 담장 위에 가슴이 붉은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조류 도감에 보니 가슴에 붉은색 털이 있는 새는 이름이 ‛로빈’이란다.
  

오늘 아침 식전에는 뛰뜰에 나와 둥지를 보니 로빈이 그 안에 앉아 있다. 내가 똑바로 보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조반을 먹고 다시 뒤뜰로 나와 살펴도 그대로 앉아 있다.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거실문을 열고 덱에 나와 비로 바닥을 쓰는 일을 멈추었다. 덱 바로 밑에는 로빈 둥지가 있기 때문이다. 뒤뜰 주변에서 풀을 뽑는 것도 그만두었다. 로빈은 먹이를 물고 조심스레 드나든다.
   

6월 중순 어느 날이다. 뒤뜰에 나와 둥지를 보니 부리가 노란 로빈 세 마리가 눈에 띄었다. 큰 녀석은 가슴 털이 붉고 머리는 검은빛이며 날개가 회색이다. 작은 녀석은 가슴이 불그스름하고 새끼는 가슴에 검은 반점이 있다.
  

며칠 후에 새끼가 궁금해서 뒤뜰로 나가 한쪽 덱 기둥 뒤에 서서 둥지를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로빈 세 마리가 후다닥 담장 너머 숲으로 날아가는데, 어미 새를 따라 나는 새끼의 날갯짓이 장해 보였다.
  

나는 지난봄 아내가 어린 손자의 사진을 받고 쓴 편지를 연상하였다. 시카고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가 선생님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가는 손자의 사진을 보냈는데, 아내는 대견히 여겼다.

      재원아, 어제 저녁나절 할아버지가 위층에서 나를 부르시더라. “이리 좀 와 봐.” 하시며    컴퓨터 앞으로 데려가시드구나. “이것 좀 봐.” 하셔서 보니 14개월이 조금 지난 네가 선생님   손을 잡고 너의 교실로 가는 뒷모습이 화면에 보였다. 그런 너를 보는 순간 할머니는 ‛어머나!’   하며 큰소리로 웃었단다. 너의 엄마가 할아버지께 드리는 이메일과 함께 첨부한 흑백  사진이드구나.

      앙증맞게 아장아장 걸어가는 너의 뒷모습은 아주 장해 보였단다. 선생님 손을 잡고 가는    우리 손자의 뒷모습이 대견하구나! 화면에 비치는 우리 손자의 발거름을 한참 드려다보고, '아!   이제부터 우리 손자의 사회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하고 혼잣말을 하였다. 딸네 집에 오셔서   잠도 못 주무시고 너를 키워 주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 크구나! 또 네 엄마  아빠가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너를 키우느라고 수고가 많았구나!

      재윈이가 기지도 못할 나이에 데이케어에 맡겨졌을 때는 그저 안쓰러운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는 네 사진은 할미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구나! 우리 손자가 이제 토들러   반으로 갔으니 네가 제일 어리겠구나. 먼저 들어온 아이들이 장난감도 빼앗고 밀치기도 할   테니 염려가 되는구나. 아이들의 버릇이 그러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가야 울지 말고 씩씩하여라. 어린 나이지만 너그러움을 배우렴. 참는  법도 배워야 한다. 대범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어른이 되려므나. 남에게 도움을 주고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거라.  날마다 즐거운 토들러 반 생활을 하기 바란다. 늘 건강하고!

       손자야 귀엽다! 시애틀에서, 할머니가.

  
다음 날도 로빈들이 궁금해서 지하방 뒤뜰로 나가 로빈 둥지를 보았다. 그랬더니 둥지가 비어 있고 그 밑에는 쇠뜨기 줄기들이 매달려 있으며 바닥에는 흰 새똥이 널려 있었다. 로빈들이 둥지를 떠난 것이다.
  

나는 로빈 새끼가 처음으로 겪는 야생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짝도 맞아서 즐겁게 지저귀며 날아다니기를 바랐다. 그리고 내년 봄에 우리 집을 찾아와서 덱 밑에 둥지를 틀기를 빌었다.

이경구
수필가.  1998년<한국수필>등단
1961년부터 30여년간 미얀마 브라질 일본 미국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 1996년부터 3년간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
현재 워싱턴주 뷰리엔 거주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